복직 3개월차 회고
작년 8월부터 올해 2월까지 7개월간 출산과 육아를 하고, 2026년 3월에 복직했다. 그리고 어느새 3개월이 지났다. 복직 초반 출근길에 『90일 안에 장악하라』를 읽으며 출근했던 것 같은데… 나는 이 90일 동안 무엇을 장악했을까? 복직 후 3개월 동안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돌아보려 한다.
변화의 핵심 — AI
가장 큰 변화는 단연 AI의 활용이다. 휴직 전에도 ChatGPT를 사용했지만, 용도는 "보고서 문구 다듬어줘", "요약해줘", "번역해줘" 수준이었다. 그런데 내가 아기를 돌보는 사이, Claude Code가 세상을 바꾸고 있었다.
작년 7월, 휴직 직전에 사내 뉴스레터에 AI Agent에 대한 글을 쓴 적이 있다. 사실 글의 메인 주제는 스테이블코인이었고, "Agent의 결제는 스테이블코인으로 이루어질 것이다"라는 이야기를 다뤘다. 그때만 해도 AI Agent는 사람이 꽤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하는 수준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제는 정말 '대 딸깍'의 시대가 와버렸다.
실리콘밸리에서 본 풍경
사실 AI의 파급력을 몸으로 실감한 건 사무실이 아니라 실리콘밸리였다. 복직 첫날엔 동료들에게 인사하고 PC 세팅을 하고, 바로 다음 날부터 일주일을 실리콘밸리에서 보냈다.
그곳에서 만난 1인 창업가들은 Agent를 활용해 개발, 마케팅, CS까지 직접 해내고 있었다. 스타트업뿐 아니라 빅테크에서도 AI는 개발자와 엔지니어의 역할을 새롭게 정의하고 있었고, 조직문화까지 바꾸고 있었다. 현직자들의 생생한 이야기를 들으니 그 변화를 더 강하게 느낄 수 있었다.
출발 전에는 실리콘밸리가 워낙 꿈의 장소처럼 느껴져서 "가면 거기에 더 머물고 싶어지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그곳에선 빨리 한국에 돌아가고 싶었다.
빨리 돌아가서 AI를 내 업무에 적용해보고 싶었다.
귀국 후에 동료들에게 클로드 코드 이야기를 쏟아내고 싶었는데 '오잉?' 회사의 일하는 프로세스는 휴직 전과 그대로여서 살짝 서운한 마음까지 들었다…ㅎㅎ
복직 후 3개월, 무엇을 했나
첫 주 — 7개월의 공백 따라잡기
복직 후 첫 주에는 7개월간의 공백을 따라잡는 데 집중했다. 물론 그 과정도 Claude와 함께했다. 복직 전에 "휴직 후 업무 적응이 제일 힘들다"는 말을 많이 들었는데, 실제로는 클로드 덕분에 업무를 파악하고 다시 흐름을 잡는 데 생각보다 오래 걸리지 않았다. 클로드 맥스는 나의 천군만마!
물론 빠르게 업무를 파악할 수 있었던 데에는 동료들이 아카이빙을 잘 해둔 덕도 컸다. AI는 맥락을 많이 줄수록 더 좋은 결과를 낸다. 그래서 업무를 따라잡으면서 나 역시 앞으로의 아카이빙을 더 잘해둬야겠다고 생각했다.
그 일환으로 노트 앱을 노션에서 옵시디언으로 옮겼다. 옵시디언이 Andrej Karpathy가 말한 'LLM Wiki'로 쓰기에 정말 잘 맞는 도구라는 걸 써보면서 느꼈다. 물론 데이터를 짱박아 두는 데 그치지 않고 내 것으로 만들어 둬야지.
옵시디언 설정은 아래 강의를 참고했다.
다시 실무로 — 직접 과제를 맡다
실리콘밸리에서 인상 깊었던 점 중 하나는, AI 도입으로 정보 취합, 일정 관리 같은 업무들이 자동화되면서 '중간관리자'가 점점 설 자리를 잃는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복직하면서 다짐했다.
실제 과제를 직접 맡아, 디테일한 실무를 다시 익히자.
그래서 휴직 전에 맡고 있던 중간관리자 역할은 넘기고, 직접 과제를 맡아 개발을 시작했다. (100% 자의는 아니고 타의도 있었음..ㅎㅎㅎ) AI가 없던 시절이었다면 "개발만은…" 하면서 어떻게든 개발자의 역할을 피했겠지만, 이제는 강력한 친구 클로드가 있다. 클로드에게 모르는 것은 물어보고, 막히는 부분은 같이 풀어가면서 과제를 진행할 수 있으니 훨씬 가볍게 시작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실제 문제를 구현해가는 재미가 있다.
2023년에 이직한 뒤 블록체인 조직을 세팅하며 1년 반 정도는 코어 기술 연구에 집중했다. 금융업에서 IT는 외주나 순환 근무 등으로 인해 기술의 연속성을 확보하기 어려운 한계가 있다.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금융기관이 블록체인 기술을 도입한다면, 내부에 반드시 남겨야 할 핵심 기술은 무엇일까?" 를 계속 고민했다.
결국 금융기관은 신뢰기관이다. 그래서 블록체인 기술을 도입할 때도 "어디에서 신뢰가 가장 크게 요구되는가"를 기준으로 연구 분야를 정했다. 내가 주목한 영역은 키 관리와 멀티체인이었다.
블록체인에서 키는 자산을 이동시키고 거래를 승인하는 권한 그 자체다. 키가 유출되거나 잘못 사용되면 거래를 되돌리기 어렵고, 고객 자산과 기관의 책임 문제로 곧바로 이어진다. 금융기관이 블록체인 서비스를 제공하려면 키를 안전하게 생성·보관·사용·통제하는 체계가 반드시 필요하다.
멀티체인도 마찬가지다. 서로 다른 블록체인을 연결한다는 것은 한 체인에서 발생한 거래와 자산의 상태를 다른 체인에서도 신뢰할 수 있게 만드는 일이다. 데이터 정합성, 거래의 최종성, 자산의 중복 사용 방지, 장애 상황에서의 책임 소재가 모두 중요하다. 그래서 키 관리와 멀티체인을 핵심 연구 분야로 선정했고, 현재도 고도화하고 있다.
작년에는 은행, 증권사와 협업해 PoC를 진행했다. 스테이블코인, CBDC 등 블록체인 기반 서비스가 거래 수단으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기술보다 규제의 허들이 더 높은 경우가 많다. 그래서 작년에는 거래 시나리오를 가정만 하고 제약 조건들은 제외한 채 기술만 검증했는데, 올해는 작년보다 조금 더 구체적인 실사례를 바탕으로 개발을 진행할 예정이다. 실제 업무 흐름과 제약조건을 함께 고려하면서 기술이 어떤 방식으로 현장에 적용될 수 있을지 더 현실적으로 검증해보고자 한다.
업무를 하면서 이제는 나만의 전문 비즈니스 도메인을 하나 잡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은 비즈니스에서 잘 모르는 기술로 밥벌이를 해왔는데 이제는 AI 덕분에 기술 구현의 장벽이 빠르게 낮아지고 있다. 오히려 비즈니스 디테일을 잘 아는 사람이 기술을 활용해 MVP를 빠르게 만들고, 더 큰 임팩트를 낼 수 있는 시대가 된 것 같다. 올해 과제를 진행하면서 구체화시켜봐야지!
워킹맘의 마인드셋 — 빠른 전환과 위임
출산 전에는 워킹맘을 그저 '자녀가 있는 여성 직장인' 정도로 생각했다. 아직 8개월 아기이긴 하지만, 직접 겪어보니 육아는 단순히 task가 하나 추가되는 일이 아니라 내 멘탈 모델 전체를 바꾸는 것임을 체감하고 있다.
워킹맘의 트랜지션은 누구보다 빨라야 한다. 연구에 따르면 출산 후 아이를 돌보는 경험이 뇌의 사고 효율을 높인다고 하는데, (육아에만 해당하는 연구인지는 모르겠지만) 실제로도 멀티태스킹, 우선순위 판단, 위기 대응 같은 역량이 좋아졌다고 느낀다. 생각났을 때 바로 행동하지 않으면 어느새 기억 저편으로 사라지기 때문에, 예전 같으면 이것저것 알아보고 비교하느라 의사결정 시간이 오래 걸렸을 일을 이제는 빠르게 결정하고 실행한다. (물론 아직도 '이게 최선의 선택이 맞나?' 하며 결정을 미룰 때도 있다.)
그리고 AI가 이런 전환과 실행을 더 효율적으로 도와주는 것 같다. 복직 후 3개의 AI Agent를 만들었는데, 그중에 아기 이유식 식단 추천봇을 가장 먼저 만들었다.
나는 주로 아기의 먹는 것을 맡아왔다. (아 그리운 모유수유 시절..) 요즘엔 이유식 만들기에 한창이다. 만드는 것은 주로 내가 하고, 먹이는 것은 남편이 하다 보니 이유식 식재료 관리가 중요해졌다. 그래서 이유식 큐브 관리 앱이 탄생하게 되었다.
- Ara (아라) — 리서치 요약 & 팟캐스트 스테이블코인·토큰증권·CBDC 관련 국내외 리서치 페이퍼를 텔레그램에 올리면, 요약, 반대 의견, 내 과제와의 연결점을 정리해주고 팟캐스트 형식의 오디오 파일로 만들어준다.
- Baram (바람) — 블록체인 뉴스 트래커 블록체인 규제는 아직 불명확한 부분이 많아 관련 법안과 규제의 흐름을 알고 있는 게 중요하다. 매일 오전 9시에 블록체인 관련 법안 업데이트를 받아본다.
- Cham (참) — 이유식 식단 추천봇 일주일 이유식 큐브 식단을 미리 짜두면, 메뉴를 바로 확인하고 먹일 수 있다.
아라, 바람, 참 탄생기는 다음 편에 적어보도록 하자 (이렇게 쓰고 적어본 적 없음ㅎㅎ).
돌아보며
조직에서 잠시 떨어져 있다가 다시 안을 들여다보니, 그 안에 몰입해 있을 때는 보이지 않던 것들도 보인다. 회사에서 평판은 분명 중요하지만, 평판을 의식하느라 본질이 아닌 일에 너무 많은 시간을 쓰지 않아야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결국 내가 집중해야 할 것은 실제로 문제를 해결하고 가치를 만드는 일이니까!
아무튼 휴직은 나에게 긍정적인 시간이었다. AI와 함께 돌아온 것도 참 타이밍이 좋았다.
"아, 역시 될 사람은 되는구나…?"
AI를 사용해 볼수록 새로운 영역에 도전할 수 있는 자신감이 생긴다. 시작과 실행의 속도도 확실히 빨라졌다. 다만 초기의 디테일한 기획과 의도는 여전히 사람의 몫이다. 실행에 내가 관여할 부분이 0에 수렴하는 날이 오더라도, 무엇을 만들지 결정하는 주체는 내가 되어야 하므로 항상 주체적으로 생각하자!
앞에서 AI 예찬론을 펼쳤지만, 그래도 여전히 사람은 자주 만나려고 한다. 내가 속한 금융기관은 히스토리와 관계가 중요하고 AI를 활용하는 것도 결국 사람이기 때문이다.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얻는 맥락과 인사이트는 여전히 크다고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육아를 함께해주는 남편에게 감사한 마음을 잊지 말아야겠다. 아기를 낳고 보니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것은 결국 누군가의 희생과 지원 덕분이라는 것을 절절히 느낀다. 내가 무언가에 집중할 수 있다는 건 그 시간 동안 남편이 자신의 다른 선택지를 잠시 내려놓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니깐, 요즘은 자연스럽게 기회비용을 생각하게 된다. ㅎㅎ 남편이 도약해야 할 시기에 나도 든든히 지원해야지!
하반기 목표
남은 하반기에는 AI를 더 똑똑하게 쓰고, 외환과 토큰증권 비즈니스의 디테일한 실무를 더 깊이 파악해보고 싶다. 마지막으로, 옵시디언에 적어둔 6F 중 Fitness와 Finance 영역의 task가 전무하다. 상반기 안에 구체적인 task를 추가하자 (상반기 한 달 남음).